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이 아침에] 아름다운 손

‘외부의 뇌’라고 불릴 만큼 뇌의 가장 큰 지배를 받는 운동기관이자 감각기관이 손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감각기관인 손은 감정을 표현하는 공간 언어라고도 하고, 마음의 대행자라고도 하고, 밖으로 나온 뇌라고도 한다.     손이 다른 사람의 손을 잡을 때 가장 아름다운 손이 된다고 ‘손에 대한 묵상’에서 정호승 시인은 말을 했다. 손은 감정적이기에 손을 잡고 보면 체온이 통하고, 끈끈한 무엇이 흐르고, 마음의 문이 열리며, 마음과 마음이 훈훈해지며, 마음을 이어준다. 손은 감정을 행동적으로 나타내는 관문이라고도 한다.   나는 매주 주일이면 내 손을 꼭 잡아주시는 모 장로님의 따스함 덕분에 행복하다. 인생길에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면 나는 성전 내 중앙통로 우측 가장자리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예배시간이 되면 중앙통로로 목사님을 선두로 뒤를 이어 흰 가운을 입은 성가대원들이 줄을 지어 입장한다. 성가대회원이신 장로님은 늘 잊지 않고 따뜻한 손으로 내 손을 잡아주시고는 지나가신다. 손으로 전해지는 따스한 체온, 손이 하는 말은 입이 하는 말보다 때론 더 강렬함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며 그 따뜻한 손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진다.   장로님이 지나가시고 나면 나는 두 손을 모으고 감사와 소원의 기도를 드린다. 시린 손, 공허한 손, 교만한 손, 야욕에 찬 손이 아니라 체온이 느껴지는 따스한 손, 신뢰를 주는 손, 겸허와 눈물을 아는 손, 타인을 위해 기도하는 손, 밀치거나 선을 긋는 손이 아닌 손 잡아주고 손뼉 쳐주는 손이 되게 하소서 하는 기도이다. 기도는 기적을 생성함을 나는 믿기 때문에 노년의 가슴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장로님을 뵐 때마다 나는 한 문장이 생각나곤 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문장이다. 장로님과 나는 오랜 세월 한 교회를 섬기며 젊은 집사로 만난 은총의 인연이다. 한 시절 나의 삶은 문학이란 꽃 한 송이를 피워내기 위해 열정과 시간을 쓰며 글쓰기에만 몰두했으나 장로님은 예수님이 새벽에 깨어 기도하셨듯이 일상생활에서 쉬지 않는 새벽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며 거룩함을 체험하셨을 것이다. 새벽기도를 통해 과거와 단절되는 훈련 받으시며 머슴 정신을 가지고 봉사하며 교회를 섬기는 충실한 장로님이 된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사는 동안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삶이란 거친 바다를 손을 잡아주며 함께 하는 아름다운 손, 그 아름다운 손을 위해 따뜻한 가슴으로 서로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는 사람들일 것이다. 손을 잡는 것은 마음과 마음이 소통하는 열쇠이기도 하지만 손과 손이 맞닿으면 감동이 더해지는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김영중 / 수필가이 아침에 성가대회원이신 장로님 중앙통로로 목사님 주일 예배

2024-08-14

[기독교와 사회물리학] 예배자와 선교자

현대교회는 예배를 강조하면서 주일 예배 뿐만 아니라 확장된 예배로서 모든 삶을 예배하는 생활을 하도록 교인들을 가르친다.     로마서 12장에서는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가 합당한 예배라고 밝힌다. 여기서 몸은 행동, 생각, 말, 태도, 정신, 마음을 포함하는 온전한 인간 즉 전인격적인(holistic) 자신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린다는 의미는 구약시대의 제사에 쓰인 죽은 대속제물이 아닌 살아 숨 쉬며 생활하는 삶 전체를 하나님께서 받으시도록 성경 말씀과 성령의 음성을 따라 전인격적으로 경건한 삶을 살라는 의미이다.     이런 의미에서 합당한 예배를 추구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을 예배하는 자로서 '예배자' 라고 부른다. 예배자는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 제한되지 않고 모든 삶의 영역에서 예배한다. 예배자는 주일예배와 같은 의례를 따라 드리는 예배 뿐만 아니라 예배가 없는 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인정하며 선포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신 일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모든 시련과 역경을 하나님의 권능과 섭리 안에서 딛고 일어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미래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간다.   현대교회는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한다. 선교사를 복음이 필요한 선교지로 파송할 뿐만 아니라 교회가 직접 선교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동참한다. 다양한 문화 속에 놓여 있는 지역교회는 하나님의 선교를 실천하는 공동체가 된다. 지역사회에 자리하고 있는 선교적 공동체(missional community)로서 교회는 통전적(holistic)으로 복음을 생활화하고 증명한다.     선교적 교회는 교인들이 예배하는 성전으로서 생업을 위해 살아가면서, 다양한 문화와 인종 속에서 복음을 들어야 할 비신자들을 섬기며 선교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가르치고 격려한다. 섬김은 복음을 실천하는 행위로서 선교적 실천(missional praxis)이다. 선교적 실천을 삶의 양식으로 여기는 그리스도인을 '선교자(missional layman)'라고 부르고 싶다.     선교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따르는 전인격적인 삶을 통해 생업에 종사하는 주중의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증명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피조세계가 되도록 한다.   예배자와 선교자로서 그리스도인은 선지자, 제사장, 왕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직무가 있다. 선지자로서 공의와 정의를 실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늘 경건한 생활을 유지하며 모든 사람에게 겸손하고 모든 일에 정직함을 지켜 세상의 모든 조직에서 본이 되는 생활을 해야 한다. 겸손하고 정직한 생활에서 나오는 경건의 능력이 복음을 증명하는 기초가 된다. 제사장으로 그리스도의 영성을 형성해야 한다.     제사장으로서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죄악을 미워하고 악인과 오만한 자와 동석하지 않으며, 말의 실수를 줄이며, 절제하고 오래 참음으로 화를 제어하고, 겸손하고 친절한 태도로 모든 사람을 대하며 그리스도의 섬김을 실천해야 한다. 또한, 왕으로서 맡겨진 모든 일을 지혜롭게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선한 마음으로 미래의 과업을 기획하고 통전적으로 적용하여 평화의 공동체를 이룩해야 한다.   예배자와 선교자는 구별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다. 수직적으로 예배자로서 살아간다면 수평적으로 선교자로서 살아야 한다. 비신자를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이끌기 위해서는 선교적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선교적 관계는 복음을 경험할 수 있는 전도의 접촉점이 되는 것이다. 선교자는 주중 생활 속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야 한다. 겸손한 태도로 즐겁게 일하면서 정직하게 일을 처리하고 성실하게 과업수행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야 한다. 비신자들이 본받고 따르고 배우고 싶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선교자의 직무이다.     선교자는 통전적으로 복음을 이해하고 상황과 환경에 맞도록 융통성을 발휘하여 비신자들에게 자신의 신앙체험과 간증을 대화함으로써 복음을 증명하고 전도한다.   미주 한인교회들이 예배자와 선교자를 제자훈련과 성경공부로 교인들을 양성하여 복음을 들어야 할 잃어버린 영혼들, 교회를 떠나 있는 가나안 교인들, 이 교회 저 교회로 떠다니는 플로팅(floating)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인도하여 온전하고 전인격적인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가는 선교적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goodchul@gmail.com 조철수 / 목사·맥알렌세계선교교회기독교와 사회물리학 예배자 선교자 선교적 교회 선교적 공동체 주일 예배

2023-05-22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